한국 금융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지적돼 온 ‘낙하산 인사’ 관행이 여전히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인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정부 고위직이나 정치권 인사들이 주요 은행 대표 자리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외부의 이목이 덜 쏠리는 자리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정치 금융’의 일환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감사나 사외이사와 같은 요직은 외부 감시가 약하면서도 보수는 높고 책임은 비교적 적은 것으로 인식되며, 정치권이나 정부 인사 출신들의 주요 착륙 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은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보증기관 등 일반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금융기관에 주로 포진하고 있다.
한편, 최근 10년 전 작성된 과거 기사와 현재의 금융권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낙하산 인사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요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구조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경험도 없이 감사 자리 차지
과거에는 최소한 경제나 금융에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이런 자리에 임명되곤 했지만, 최근에는 관련 경력이 전무한 인사들까지 당당히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대통령실을 떠나 취업 심사를 받은 44명 중 8명이 금융권에 입성했다. 이들 중 일부는 건설사 출신 등 금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이었다. 대표적으로 김대남 전 SGI서울보증 상근감사가 언급된다.
하지만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다. 내부통제를 책임지고 회계 감사를 수행해야 하는 중요 직책이며,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가 해당 자리를 ‘편안한 휴식처’ 정도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공적자금 투입으로 낙하산 인사들의 주요 거점이 됐던 우리은행에서도 700억 원대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부통제 무력화, 금융 선진화 발목
이러한 낙하산 인사는 내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조직 내 열패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선 직원들은 이미 낙하산에 대한 기대를 접었고, 노동조합조차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출근 저지 투쟁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금융 당국의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최근 민간은행에서 횡령, 부당대출 등의 사건이 잇따르자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나서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했지만, 정작 내부통제의 핵심 자리에 낙하산 인사가 배치되는 구조에서는 당국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 산업의 신뢰를 회복하고,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는 것이 필수 과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도적 보완과 함께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인사의 전문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근본적인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