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도 3분의 1환점을 돌았다. 올해 개막 초반 두 달은 유독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국내 팬들의 체감 거리가 훌쩍 가까워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4월은 온전히 이정후의 시간이었다. 양키스와의 시리즈에서 몰아친 3방의 홈런은 샌프란시스코 초반 돌풍의 주역이 되기에 충분한 압권이었다. 배턴을 이어받은 5월은 김혜성의 독무대였다. 다저스가 마침내 깔아준 멍석 위에서 기회를 멋지게 낚아채며 성공적인 빅리그 상륙기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무대가 무르익어가는 다가오는 6월, 이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메리칸리그 동부로 쏠린다. 드디어 김하성의 시간이 온 것이다.
탬파베이의 조급함과 김하성의 여유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시작된 김하성의 첫 재활 경기 성적표는 2안타 1사구 3출루, 여기에 도루까지 곁들이며 꽤나 산뜻하게 출발했다. 최대 20일이 주어지는 재활 기간을 꽉 채워 쓸지는 미지수지만, 케빈 캐시 감독의 말마따나 “스프링캠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몸을 확실히 만들고 6월 안에는 무조건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탬파베이가 지난 2월 김하성에게 안겨준 2년 2900만 달러(약 395억 원)라는 계약 규모, 그리고 팀 내 연봉 1위(올해 1300만 달러)라는 상징성은 구단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작년 5년 연속 이어오던 가을야구 진출이 좌절된 데에는 사실상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끝장난 완더 프랑코의 충격적인 이탈 탓이 컸다. 갑작스럽게 뚫린 유격수 자리를 네 명의 선수가 돌려막기 했지만, 이들의 도합 타율 0.212, 조정득점생산력(wRC+) 75라는 리그 평균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처참한 성적표만 남겼다.
물론 김하성이 리그를 폭격하는 거포형 타자는 아니다. 통산 wRC+ 101로 공격력 자체는 리그 평균 수준에 수렴한다. 하지만 탬파베이가 돈보따리를 푼 이유는 수비와 주루, 타격을 아우르는 그의 종합적인 기여도에 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통산 WAR 15.1이라는 수치는 그가 건강만 하다면, 지난겨울 7년 1억 820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린 윌리 아다메스급의 가치를 지녔다는 걸 증명한다.
더욱이 현재 탬파베이는 허리케인 밀턴으로 홈구장 지붕이 뜯겨나가며 양키스의 야외 훈련장인 스타인브레너필드에서 눈물겨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47경기 중 35경기가 원정으로 배정된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5할 승률을 맴돌며 고전 중인 팀의 분위기 반전을 위해 김하성의 활력이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필요한 시점이다.
바다 건너 KBO, 5년의 기다림 끝에 알을 깬 앳된 투수
태평양 건너 메이저리그에서 베테랑의 묵직한 귀환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면, 한국 KBO리그에서는 무려 5년이라는 긴 인고의 시간 끝에 마침내 자신만의 시간을 맞이한 선수가 있다. 한화 이글스의 우완 투수 박준영(23)이다.
지난 14일 고척 스카이돔. 키움 히어로즈와의 맞대결에서 박준영은 선발 정우주에 이어 5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팀이 3-1로 앞선 팽팽한 상황에서 1⅔이닝을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틀어막았다. 이후 타선이 무섭게 폭발하며 10-1 대승을 거뒀고, 마운드의 허리를 든든하게 지켜낸 박준영의 이름 옆에는 프로 데뷔 5년 만의 ‘첫 승’이라는 감격스러운 타이틀이 새겨졌다.
사실 그의 출발선은 꽤나 화려했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 입단 동기인 문동주와 함께 한화 마운드의 미래를 책임질 특급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얄궂게도 두 선수의 시계를 다르게 돌렸다. 문동주가 신인왕을 거머쥐며 리그의 간판으로 커나갈 때, 박준영은 통산 2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07이라는 부진의 늪에서 허덕였다. 선발로 나설 기회도 종종 있었지만 승리와는 통 인연이 닿질 않았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을 4.70까지 끌어내리며 조금씩 영점을 잡아가던 와중에 구원 등판으로 기어코 마수걸이 승리를 따낸 것이다.
흥미로운 건 현재 한화 1군 엔트리에 ‘박준영’이 두 명이라는 사실이다. 선배인 96년생 박준영과 육성선수 출신이자 대졸이라 나이는 한 살 더 많은 68번 박준영이 그 주인공들이다. 류현진이 나이순으로 ‘투(2)준영’이라 장난스레 부르는 96번 박준영의 첫 승에는, 며칠 전 LG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깜짝 선발승을 거둔 형 68번 박준영의 활약이 묘한 자극제로 작용했다.
경기가 끝난 뒤 박준영은 “형이 어려운 선발승을 해내서 속으로 자극은 받았지만, 오늘 등판에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다”며 “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한 과정은 아쉽다. 앞으로는 행운의 승리보다는 좋은 과정을 통해 팀의 연승에 기여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차분하게 소감을 밝혔다.
6월의 콜업을 앞두고 마이너에서 묵묵히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김하성, 그리고 지난한 5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막 자신만의 알을 깨고 나온 박준영. 무대의 크기와 유니폼의 무게는 다르지만, 야구라는 스포츠가 공평하게 건네는 묵직한 진리는 결국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타임라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먼저 핀 꽃이 지는 동안 늦게 피어나는 꽃이 있듯, 조급함을 버리고 묵묵히 준비한 이들에게 찾아올 다음 시간들이 꽤나 흥미로워진다.